내취미 낙서

유월의 아침

시골아이! 2003. 6. 20. 14:49

그대 늙어 백발이 되어 졸음만 쏟아지고
난로 가에서 고개 끄덕 끄덕일 때
이 책을 꺼내...
천천히 읽어 보세요

예이츠의 “그대 늙었을 때”라는 시를 읽다가 나는 문득 병상에 누워 힘겨워 하시는 아버님 모습을 떠올리고 창 밖의 등나무 어우러진 유월의 푸른 신록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젊었을 적 사진(아직도 내가 간직하고 있는)속의 팽팽한 청년 아버님의 모습, 닷새 만에 돌아온 시골 장터에 계란 한 줄을 판값으로 철부지 어린 나에게는 국수를 사 주시면서도 막걸리 한 사발로 허기진 배를 채우시던 우리 아버님. 농사일로 한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이 지게 가득한 나뭇짐을 지고 산비탈을 내려오시던 주름살 굵게 패인 耳順의 모습들이 청년처럼 푸른 신록 속에서 영화 필름처럼 짧게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병상에 누워 거동조차 어려운 불편한 몸으로 하루하루 병마와 싸우시는 초췌해진 모습과 그런 당신을 어떠한 도움도 드릴 수 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무능해 보여 한없이 슬퍼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영원할 수 없으며 언젠가는 그 끝이 있게 마련인가. 인간의 유한함에 창조주를 원망해 본다.

80 평생을 자식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 의롭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버지.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항상 강인하고 모든 가족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그 큰 어른이 언제부턴가 그렇게 나약하고 작은 모습으로 느껴지다니...

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어서도 철이 덜 든 자식의 어깨와 마음을 의지하여 쇠잔한 몸을 이끄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만물이 생동하고 충만한 유월의 이 아침에 서글픔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나도 이제 철이 들어가고 있음을 뜻할가?

갑작스런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와 여기저기 검사 끝에 급성 담낭염이란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노환으로 기력이 쇠잔하여 생명을 담보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땐 목이 메어 아무런 말도 잇질 못했다

“하늘이시여 어찌하여 나에게 이 큰 시련을 주시나이까? 언젠가 무딪칠 아픔이련만 제발 몇 년 만이라도, 아니 정신을 차리고 효도의 길로 입문할 수 있는 조금의 시간만이라도 이 시련을 연기하여 주옵소서...”

얇고 가늘고 힘이 없어진 아버지의 여윈 손을 잡으며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아버지. 든든한 자식 역할을 단 한번도 잘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라도 당신 곁에서 더 많은 시간 함께 하면서 참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을 좀 주세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씨앗을 맺을 수 없다 했던가. 백년 이백년을 산다면 육신은 말할 것도 없이 영혼마저도 말라 비틀어져 버릴 것이기에 우리 인생은 살아 숨쉴 영혼이 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야만 하는가.

가느다란 로프 하나에 의지하여 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몹시도 수척해진 아버님을 수술실에 들여보내던 그 날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초조 긴장의 연속이었다.

80을 훌쩍 넘기신 고령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큰 수술을 잘 견뎌내시고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지금은 병실에 올라와 비록 도움이 필요하지만 조금씩 운동까지 할 수 있게 되어 걱정해 주신 모든 이에게 고맙고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세상엔 완벽한 행복이 없는 것 같다. ‘신은 공평하셔서 다 극복 가능한 시련만을 주신다’고 나를 위로하던 가까운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영원히 늙지 않으리라는 오만과 자만심으로 살아왔던 젊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병들고 늙고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은 신의 섭리이자 자연의 지극한 이치이리라. 우주 만물 속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 무엇을 얻겠다고 영원히 살 것처럼 싸우고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마침표 앞에선 모두가 부질없고 헛된 꿈에 불과하리라는 조금은 염세적인 생각도 든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심사관 업무를 시작한지 벌써 반년이 다 되었다. 영원히 풀 수 없는 꼬여져버린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사건의 당사자를 대하고 보면 의외로 그 들이 얻으려 하는 것이 너무도 작고 사소하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지금 당장은 그것 없으면 죽을 것처럼 행동하고 자기의 길만이 정당하다고 백 번이나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들이 정당하게 얻고자 하는 것을 쉬 포기하거나 상대방의 부정이나 불의를 눈감아 버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덕으로 이웃을 대하면 얽혀진 실타래의 끝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단지 자연속에 잠시 지나가는 손님에 불과하다. 자연은 어제도 그랬듯이 우리가 떠난 뒤 앞으로도 여전히 이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현재는 신의 선물(The Present is present)이라 말했던가.

 

주어진 오늘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항상 감사할 줄 아는 아름다운 자연인이 되어 저 등나무들처럼 저 푸른 숲처럼 거듭 태어나고 싶은 아름다운 유월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