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스(에페소스, Efes)의 옛 도시와 성모 마리아의 집
에베소스는 한마디로 장엄한 고대 역사의 살아 숨쉬는 서사시다.
일찌기 로마 포럼를 본적이 있지만 이보다 더 역사의 현장이 눈앞에 다가온 적은 없었다.
에게해 연안의 부유한 고대도시 에페스는 기원전 3세기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휘하의 장수 리시마쿠스가 피온산 계곡에 세웠다. 도시를 성벽으로 요새화시켰는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에페스는 그당시의 유적들이다. 그후 그리스의 페르가몬
(성서의 버가보)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33년부터 로마의 령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번영의 길로 들어선다. 로마는 로마제국의 아시아 수도를 페르가몬에서 에페스로
옮기고 씨이저가 죽은 후 안토니우스 황제는 옥타비아누스와 대치하던 중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한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더욱 번성하여 세계 5대도시중의 하나로 인구 25만명의 대도시가
되었다.
기원후 1세기에는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3일만에 부활하자 제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세상을 구하고자 뿔뿔히 흩어졌다.
사도 바울은 이곳 에페소스에서 교회를 짓고 선교활동에 힘쓰다 간신히 목숨은 구했으나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때 에페소스 교인에게 쓴 옥중편지가 신약성서의 에베소서다.
사도 바울이 순교하자 사도 요한은 그 뒤를 이어 에페소스의 지도자 되고,
예수의 뜻에 따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곳 에페소스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요한복음을
남겼다.
고대 도시 에페소스는 기독교도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서서히 상업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한편 홍수등으로 침식되어 도시에 닿아있던 항구가 서서히 밀려 4km나 떨어져 나가면서
황폐해지기 시작하다가 끝내는 1천년이나 진흙속에 묻혀버렸다. 1,900년대에 도시의 잔재
가 발견되면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터키의 경제사정과 연일 수천명씩 몰리는
관광객의 덕분에 발굴작업은 지연되어 현재 전체 유물의 5%밖에는 밖으로 나와있지 않다는
가이드의 말은 거짓말같은 사실 같았다.
들어가는 입구는 두군데가 있습니다.
대리석 기둥들이 즐비한 아고라 오른쪽엔 로마시대의 국회가 있습니다.
반달 모양의 부채꼴로 펼쳐진 국회, 로마시대엔 45명의 의원들이 있었답니다.
지팡이와 뱀의 조각으로 보아 병원의 입구로 보고 있습니다.
세개의 신전과 분수가 있던곳
목욕탕...냉탕, 온탕, 증기탕으로 구분되어 있다.
목욕탕의 배관
공중화장실..구멍이 난 곳에 일을 보면 3미터 정도 높이의 바닦으로 ...
셀수스 도서관...장서가 1만2천권이나 있었다는데, 지금은 도서관의 정면만 남아있다.
도서관 정면에 자리한 창녀촌...작은 방들이 줄지어 붙어있다.
위치가 참 묘허다~~
세계 최초의 그림 광고...
창녀촌 입구 도로 대리석 바닥에 새겨진 발...발이 이정도는 돼야 이곳에 들어올수
있습니다~~ㅠㅠ
노예들도 팔았던 시장
관객 25,000명을 수용했던 원형극장..돌계단 아래를 직각 이상으로 파내어
소리를 울리게 함으로써 뒷자리까지 잘 들리게 했단다.
항구로 이어지던 길..이젠 항구가 이곳에서 4km나 떨어져 있다.
또 다른 입구로 나가고 있씁돠..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기둥 한개만 남았다. 저 기둥위에
황새가 집을 짓었는데 한마리 앉아있다.
큰기둥 왼쪽 뒤 건물이 14세기의 모스크, 언덕위의 원형으로 둘러진 것이 셀주크 성,
성의 오른쪽 넒은 건물은 성 요한 교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힌 종이를 저렇게,,,헐~~
성모 마리아의 집 담벼락에 저런 미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