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산토리니 섬에서의 드라이브
6.3(토)...따뜻한 남국의 봄날이다..
새벽녘, 스쿠르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배의 속도가 떨어진다.
아마도 델로스 섬에 도착했다보다. 선착장에 부딪치는 파도가 얼마나 심한지 커다란 여객선인데도
롤링이 심하다. 델로스 섬을 거쳐 목적지 산토리니에는 아침 8시가 넘어야 도착한다고 했다.
밖에선 승객들이 오르고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배안은 덥지도 춥지도 않다. 이불을 끌어당겨 덮으니 포근하기까지 하다.
제우스의 애인 레토가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질투의 화신 헤라가 가만 있을 수 없지..
그리스 어느곳에서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자 떠다니는 섬 델로스에서 헤라 몰래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을 낳았다네...^^
아름다운 섬이라는데, 새벽이라 아무것도 볼수 없을거 같고 나가기도 귀찮아 눈도 뜨지 않고
이불만 뒤집어 썼다.
스크루 도는 굉음이 들리고 항해는 계속됐다. 자는둥 마는둥... 아침 6시가 넘어 일어나니
벌써 태양은 중천이다.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마치고 선미로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벌써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대충 눈을 붙인 배낭여행객들이 의외로 많다. 그 중에 대한항공 담요를
어깨에 두른 대한민국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몇명 보인다.
푸른 바닷를 하얗게 가르며 달리는 뱃전에 기대어 서니 따사한 아침햇살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싱그럽고도 상큼하다.
애엄마와 예륀이는 멀미로 속이 메스껍다고 울쌍스런 모습으로 의자에 쭈구리고 앉아있고,
이강이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팔팔거린다. 귀미테도 효과가 없나??.. 아님 귀미테 덕분에 참을만...?
8시인데도 바다위의 해는 벌써 중천이다. 조금 있으니 드디어 터키 국기같은 초승달 모양의 산토리니
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몇개의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층층이 눌러 만든 듯한 적갈색의 단층이 섬의 절벽에
나이테처럼 둘러져있는 그 위에는 하얀 눈으로 덮힌 듯한 집들이 빼곡하다.
이 섬은 지금으로부터 3,500년전의 대규모 화산폭발로 섬의 중심부가 가라 앉으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초승달 모양으로 되었단다.
화산이 폭발했다는 중간의 화산섬을 이으면 반달모양 같기도 하다.
이 섬은 고대로마 이전부터 사람이 살면서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 보다도 앞선 키클라데스 문명
이라는 훌륭한 시대를 열었으나, 그 문명이 한 순간에 역사의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곳이 환상의 대륙 아틀란티스가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특히 경관이 아름답워 휴양을 위해 이곳을 찾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붐빈다.
하선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여객선의 1,2층은 자동차, 3,4층은 객실인데 아마도 자동차부터
하선시키는 모양이다.
근데, 선착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던 렌트카가 보이질 않는다. 알고 보니 old port로 갔단다.
이곳은 new port라나..헐~~이런 녀석들...열받네..배가 어디에 도착하는줄도 모르다니..
택시로 시내에 있는 렌트카 사무실까지...기아의 신형 피칸테...기스하나 없는 최신형이다.
오랜만에 잡는 운전대... 89년 라이센스인데도 좀 어색하다.
오늘은 아름다운 섬마을을 그저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훼리를 타고 크레타 섬까지 갈 예정이다.
오후 6시 훼리를 타기 전까지는 우리 맘대로 즐기며 시간을 보낼수 있다.
산의 중턱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쪽엔 바다가 물감을 엎어논 듯 파랗다. 우연히 나타난 마을 슈퍼에
들어가 먹거리라도 좀 살까하고 잠시 쉬는데 사람들이 줄줄이 동네 골목길로 들어선다.
아무래도 이 골목 안에 뭐라도 있는 모양이시...우리도 덩달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헉~~
초승달의 끝자락, 이 섬의 입구에 있는 이 마을은 배위에서 볼 때엔 산위에 하얀 눈이 쌓인 것처럼
보였는데 모두 하얀 지붕과 이쁜 집들이다.
푸른 에게해가 보이는 절벽위에 동그란 교회 지붕과 풍차가 있고, 담쟁이 덩쿨이 하얀 벽을 감싸고
올라가는 아름답기 그지없고 동화속 요정들이 사는 집 같다.
골목길 여기저기 한 두어시간 동안 다섯 걸음을 제대로 못걷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예륀이는 어느 악세사리 상점안에 들어가더니 나오질 않는다. 경치 구경은 뒷전이고 가는 곳마다
쓸데없는 물건에만 신경을 쓴다고 한소리 했따. 영 마음이 언짢다. 언제나 철이 들까...
산에서 내려와 해안가를 따라 달렸다. 열어제친 차창 너머로 바다의 파란 내음이 물씬 풍긴다.
깔라마리 해변은 검은 돌들이 쫘악 깔려 우리네 몽돌 해수욕장과 흡사했다.
바닷가를 따라 펼쳐져있는 파라솔 밑에 젊고 또는 늙은 남녀들이 쌍쌍이 앉아 허연 피부를
벌겋게 굽고 있는 길거리 레스토랑에 앉아 맥주도 한잔 곁들여 비싼 점심을 먹었다.
근처에 비행장이 있는지 착륙하려는 비행기가 바다에 닿을 듯 낮게 난다.
섬지도를 보아가며 발닿는대로 달렸다. 야자나무 늘어진 포도위를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제치고...
오랜만에 하는 운전 탓인지, 가끔 시동이 꺼진다...ㅎㅎ.. 워찌 이런일이~~
섬의 반대편으로 가려고 언덕을 오르는데, 저 멀리 산꼭대기에 교회같은게 보인다. 오르는 길은
좁고도 경사가 심한 비탈길이다.
오른쪽으론 바다가 보이는 절벽...운전대가 나도모르게 자꾸 왼쪽으로 틀어진다.
맞은편에 오는 차를 겨우... 오른쪽으로 비킬땐...헉 -_-;; 등골에서 땀이 다난다.
산 정상에 오르니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지금 있는 큰 섬은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져있고 그 가운데 옴팡 들어간 바다엔 화산이
폭발했다는 화산섬이 있다. 화산섬 저 너머엔 또 다른 두개의 섬이 보인다.
초승달 저 끝에는 하얀 눈으로 덮힌 듯 오이야 마을이 보이고 섬의 중앙에 이 섬의 번화가인 중심가...
그리고 동쪽의 넓은 벌판 끝 바닷가엔 비행장도 보이고, 초승달의 안쪽에는 병풍같은 절벽이 많다.
조심조심 꼬불꼬불 산허리를 돌아 서쪽 바닷가로 내려가니 검은 조약돌과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아직은 철이 이른지 꼬마 어린애 둘이서만 물가에서 놀고있다.
애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가 신발을 적셔가며 하얀 파도를 즐긴다.
아쉽지만 저녁때에 크레타 섬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이젠 정들었던 피칸테와 헤어져야 한다.
렌트카 사무실에 차를 반납하고, 사장이 운전하여 선착장으로 갔다.
기상때문에 우리의 배가 연착한단다. 바람이 세게 분다나...오후 6시가 넘어 우리를 실을 훼리가
도착했다. 갑판이 없고 창문이 달린 늘씬하게 빠진 Flying Cat...
이 배는 4시간 거리의 크레타 섬까지 2시간만에 주파하는 쾌속선이다. 선실밖으로 나갈수 없도록
단단한 창과 유리로 벽을 만들어 유리창을 통해 바다를 볼수 있었는데, 출항한지 얼마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았다.
배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고 큰 파도를 넘을 때엔 피칭이 아주 심하다..물론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도
있지만, 큰 파도위를 올랐다가 5,60미터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는데...
그야말로 날으는 양탄자같다. 여기 저기서 멀미로 토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애들과 애엄마는 귀미테를 붙여서인지 아직은 괘안타.
파도를 넘는 그 스릴이 어디 바이킹에 견주랴... 옆자리의 한 할머니가 괜찬냐고 묻는다.
환타스틱 하다니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대단하단다...ㅎㅎ
파도를 타며 넘는 창가엔 갈라진 하얀 파도자락이 여지없이 부딪치고...
배는 몇번 타봤지만 쾌속선은 처음이다. 갑자기 아직도 안타본게 많이 남았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탈 건 꽤 탔었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 열차, 자동차, 버스, 트럭, 애드벌룬, 행글라이더, 펠루카, 여객선, 스키까지...헉~~
어깨뼈 부러진 야기는 잠시 잊고...
아니나다를까 조금 있으니 애들이랑 애엄마, 귀미테가 소용없다. 애엄마는 멀미로 얼굴이 샛노래져
애들도 제켜둔 채 찬바람끼 조금 나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얼굴색을 보니 이거 보통 심각한게 아니다. 애들볼랴,,, 엄마볼랴...
여기저기 종이팩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직원들은 바쁘다.
시간이 지지리도 아니 갔으리라...
출항한지 2시간이 힘겹게 채워지고, 노을이 붉게 물든 크레타 섬의 항구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내리기 위해 줄을 만들어 기다리는 동안에도 애들과 엄마는 정신없이 자리에 앉아있다.
아직도 머리엔 식은땀이 흐르는 듯 했다.
거듭되는 피칭과 롤링의 2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도 머리가 띵해온다. 이대로 한두시간만 더 가면
멀미를 하지않고는 못배길것 같기도 하다.
밖으로 나오니 찬공기가 그리도 반가울수가 없다. 거리는 어둑어둑, 가로등 불빛 하나 둘 늘어가고..
물어물어 골목 한쪽에 붙어있는 호텔을 찾기란 그리 쉽지않았다.
버려진 강아지인가??? 자꾸만 우리 뒤를 따른다. 저를 키워줄 맘씨좋은 사람으로 착각한거 아녀???
우린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란다. 지발 딴데가서 알아봐라~ 잉~~~
겨우 찾은 Rea 호텔에 짐을 던져 놓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아까 본 깨끗한 식당으로
들어가 가볍게 저녁을 주문했다.
아~~ 아직도 뱃속인 듯 뱃속이 울렁인다.
롤링으로 흔들리는 식당에서 밖으로 나오니 이제야 식구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