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빈을 뒤로하고 짤즈부르크로
7.11 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한국의 날씨도 지금쯤 이처럼 무덥겠지..
푹자고 일어나니 벌써 훤하다. 엄마도 곧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준비를 한다.
기숙사 시설보다 헐 낫다. 새로 지은 밥을 라면국물에 말아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성 슈테판 성당은 지하철 3호선으로 다섯 정거장, 구왕궁(시청사역)에서 내리니 바로 눈앞에 있다.
유럽의 성당은 어딜가나 비슷하다. 몇개의 뾰족한 첨탑이 있고 예수와 성인들의 상이 있는
꺼무잡잡한 고딕식 건물들은 이젠 눈에 익숙하다.
이 성당은 12세기에 지어진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 성당으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137m의 첨탑이
유명하다.
근데, 그보다도 모짜르트가 결혼식을 올리고 장례식도 치른 곳이라 하여 웬지 더 보고싶다.
상하지 않은 깨끗한 벽화들과 기둥들, 고딕양식의 현란한 스테인드글라스에 잠시 넋이 나갔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식구들이 안보인다.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두어번...예륀이가 부른다.
가이드 투어만 가능한 제단을 잘못 단체관광객들 틈에 끼어 갔다왔다네...헐~~
10시부터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는 카타콤은 역대 황제들의 장기, 추기경들의 관, 흑사병으로
숨진 2,000여구의 유골들이 있다. 날씨에 지하는 시원해서 좋았다.
밖으로 나오니 아침부터 찌는 더위가 밀려온다. 가이드는 밖에서 투어요금을 챙긴다.
구왕궁 옆에 자리한 오페라하우스까지의 거리는 빈의 최대 번화가이다. 600m 남짓한 거리에 카페,
레스토랑, 유명 부띠끄들이 모여있는 보행자들의 천국이다. 예술가인지 거지인지 바이올린 치켜들고
동전 한닢씩 벌고있는 잘생긴 선남선녀들도 곳곳에 보인다.
흑사병을 이긴 기념 탑도 있다. 중세에 흑사병으로 당시 인구의 1/3을 잃었다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싸스니 조류독감이니 떠드는데, 실감이 난다.
구왕궁이 있는 골목길에 접어들자 각시는 엘리자베트 왕비의 유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에 간단다.
난 그런곳까지 갈 돈과 기력이 없다. 사실 돈이... 욕심많은 각시는 혼자라도 간단다...헉~~
어쩐일인지 예륀이도 따라 나서고...
엘리자베트 왕비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부인으로 어릴적 아명은 씨시(Sisi)였다. 무척이나 이뻐
요제프 황제가 첫눈에 반했다는 그녀는 매일 승마와 체조 등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저녁을 거의
굶어 날씬한 몸매를 유지했단다.
이강이와 난 엘리자베트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한장 기념하고 어제의 신궁전 광장의 나무그늘이 있는
벤취에 자리를 잡고 쉬었다.
오랜만에 부자지간에 가진 단촐하면서도 긴 휴식시간이었다. 사진도 찍고 쫑알쫑알...
이강이가 관심있는 군대이야기, 한국에 돌아간 후에도 자신의 개인 연구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친구들과 미래의 이야기...
이강이는 생각보다 속이 깊고 영리한 아이다. 내 새끼라서^^?? ㅎㅎ
한 시간도 더 지나서야 두 모녀가 뙤약볕에 양산을 들고 나온다. 아까부터 배가 고팠는데...
앉은 벤취에서 과일 몇쪽으로 주린 허기를 약간 감추고 미술사박물관으로 향했다.
500여 미터의 거리지만 그늘을 벗어나면 살 익는 냄새가 난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제국광장 건설에 맞춰 19세기 말에 지어진 르네쌍스 양식의 건물로
합스브르크 왕가가 수집한 7,000여점의 예술품이 소장되어 있단다.
정문에 들어서니 둥그렇고 큰 마당이 나오고 천장 역시 둥근 돔에 프레스코화가 있다.
이런 건축을 로마시대부터 '로툰다'라고 부른단다.
로툰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앙엔 아테네의 젊은 영웅 테세우스가 친구의 신부를 납치하고
결혼식을 망친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를 죽이는 모습의 조각이 있다.
브뤼겔,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 당시의 유명한 화가들의 명작들이 수도없이 많았다.
그림의 설명들은 <추억의 사진첩>에서 설명키로 하고...
2,3층의 회화들을 주로 구경했다. 1층의 그리스,로마,이집트의 방은 이미 다 현지에서 보았던 것들이라
애들은 의자에서 놀라하고 두 내외만 한걸음에 돌고 나왔다.
오후 3시가 지나 박물관을 나오니 햇볕은 쨍쨍, 뱃속은 꼬르륵~~
더 이상 발을 뗄 기력이 없다. 겨우 버스 정류장으로 나와 핫도그 하나씩 입에 물고 버스를 탔다.
모짜르트 꽃시계가 있는 정원 벤취에 앉아 한참을 쉬고나니 한결 낫다.
이제야 모짜르트의 쎄레나데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버스를 타고 찾아간 벨베데레 궁전은 너무 컸다. 아직도 햇볕은 강하지, 기력들은 없지...
17세기 투르크군을 무찌른 오이겐왕자의 여름별장인 이 궁전은 상궁, 하궁, 오랑게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언덕위의 상궁에서 정원 너머로 내려다 본 하궁은 다른 동네에 있는 것처럼 멀다.
둘러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등짐이 무거워 예륀이한테 물병을 좀 들어달라면, 어느새 그 물병은 이강이한테 가있다.
이강이를 꼬드겨 물을 마시게하고는 마지막 마신 사람이 들고 있기로 한다는 규칙 아닌 규칙을 만든다.
물론 이강이한테 가 있는 물병은 바로 엄마가 챙겨 들지만...
날씨도 더운데, 얄미운 예륀이땜에 짜증이 더 난다.
시간도 없고, 짜증도 나고, 기력도 없고...좀 쉬었다가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이 궁전 안은 현대화가 주로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관람시간도 거의 끝났다.
오후엔 짤즈부르크행 기차를 타야하고...그리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엄마는 어제밤 무슨 벌레가 물었는지 몇군데 가렵다고 하더니 짓물이 난다.
날씨도 더운데, 가려움을 참느라 고생이 두배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어제 내렸던 역으로 가서 곧바로 짤즈부르크행 기차에 올랐다.
3시간 정도 달리면 목적지에 도착한단다.
도시를 벗어나자 바로 숲속으로 난 길을 달린다.
예륀이한테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몇번의 설교들 한 덕분에 짜증으로
정신이 산란했었는데, 이제 좀 풀린다.
시원한 숲과 푸른 언덕, 손뻗으면 닿을 듯한 하얀 뭉게구름, 간간히 지나가는 누런 밀밭과 아직은 푸른
옥수수밭, 짓은 녹음뒤로 숨어있는 빨간 벽돌집들...금방이라도 하이디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
저녁 8시반이 되어 도착한 짤즈부르크 역은 아직도 서쪽에 걸린 해가 넘어가려면 한자는 남았다.
유스호스텔 주소를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어느 중년 남자가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주소를 보더니
자길 따라오란다.
좀 미심쩍기도 하지만 우리식구 넷이나 되는데 뭘 어쩌겠노 싶어 그냥 따라갔다.
컴컴한 굴다리도 지나고...10여분 걸었다. 호텔 앞이다. 워매~~ 이리도 고마울수가...
그냥 돌아서는 친절한 그에게 한국산 엣세 한갑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YOHO 유스호스텔은 젊은이들로 붐빈다. 나도 젊어지는 느낌이다. 구하기 힘든 4인실 방도 프론트
아가씨가 특별히 배려해줬다. 여기서도 호텔운은 좋은 편이다.
프론트에도, 복도에도 영화 Sound of Music의 실존 주인공이었던 본 트랩 대령의 실존 사진,
줄리 앤드루스역의 마리아 사진도 걸려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집에서 이미 이 영화의 비디오를 다시 보고 왔는데, 내일 있을 Sound of Music 영화
투어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맘이 설렌다
마리아 수녀가 다녔던 수녀원, 보트 타다가 빠졌던 저수지, 아이들이 한나무씩 기어올라가 노래부르던
가로수, 결혼식이 있었던 성당, 에델바이스를 부르고 사라진 공연장, 숨었던 수도원의 묘비 등...
고등학교 시절...이 영화를 본 이후로 나의 여성상이 완전히 굳어졌었다..
그 때의 줄리 앤드루스의 청순함은 지금까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봐도 그때의 그 이미지다.
각시랑 Bar로 내려가 생맥주 한잔씩 들고 홀로 나왔다. 방명록엔 한글이 많이 보인다.
각시가 유랑카페의 닉을 사용해 한줄 남긴다.
오늘 밤은 쉽사리 잠을 이룰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