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헤밍웨이의 걸작 소설을 대본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기억하실 겁니다. 1930년대 후반의 스페인 내란을 주제로 한 이 소설과 영화에서 우리는 전쟁의 참화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때는 1937년 4월 26일. 스페인의 북부 지방에 있는 비스케이(Biscay) 만 근처에 있는 게르니카(Guernica)라는 작은 마을에는 갑작스럽게 독일의 전투기들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비록 전쟁 중이라고 하지만 평화롭기만 하던 이 무방비 도시는 삽시간에 나치군의 폭격으로 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마굿간의 소들은 울부짖고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은 독일군의 폭격 아래서 무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아 날의 폭격으로 645명이 죽고 889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본래 이곳 게르니카의 부족들은 순수한 스페인 민족이 아닌 바스크(Basque)족으로서 스페인 정부에 대한 독립 투쟁을 전개해 오던 중이었고 산악 전투에는 능한 사람들이었으나 적의 공습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비록 바스크족이 소수 민족이었다고는 하지만 게르니카의 비극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평화 애호가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당시 스페인 화단(畵壇)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이미 구라파에서 그 명성을 떨치던 파블로․피카소(P. Picaso)는 독일군의 만행에 격노했습니다.
웅변가도 아니요, 문필가도 아닌 피카소는 당시의 비극을 화폭에 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피카소 일생 일대의 걸작인 [게르니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너비가 782.5cm이고 높이가 351cm인 이 대작에는 육신이 찢겨진 마소(馬牛)와 나뒹구는 인간의 시체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듯 널려 있습니다. 이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란과 독일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에 있어서 그 어떤 글이나 웅변보다도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2년 뒤에 피카소는 고국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고국을 떠나면서도 이 그림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 후 이 그림을 미국에 기증하면서, "나의 조국에 자유가 찾아오면 이 그림을 스페인에 돌려주어야 한다." 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F. Franco)가 죽고 민간 정부가 수립되자 스페인 사람들은 이제 스페인에도 자유가 찾아왔으니 피카소의 유언대로 그림을 돌려달라고 요청하여 1992년 소피아 왕비 미술관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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