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과거의 잔상들을 한데 모아두고 싶다.
그래야 언젠가 그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며
엷은 미소라도 머금을 수 있지 않을까??
벌써 내 나이가 그렇게 됐나...
가슴속에 남아있는 젊은 날의 일들을
챙겨두고 싶은...
즐거웠던 장면들
행복했던 순간들
아쉬움의 손짓들...
먼 옛 날 그 들 하나하나
나의 삶이요, 내 인생이다.
여기 그 삶과 인생을 함께하고파
회상의 한자락씩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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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첫 나들이
내가 살던 시골은 산촌의 농촌이었다.
뒤로는 산, 앞으론 밭과 논을 지나 맑은 시내가 흘렀고
동네 꼬마 녀석들의 뛰어노는 소리가 온 마을과 함께했다.
능길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점심 수저 놓기가 바쁘게 냇가(비치개)로 달려가 친구들이랑 멱감고 물장난에
해지는 줄 모르고..
실퍽하다 싶으면 긴 막대에 비닐봉지를 매달아 매미채를 만들어
한 여름의 더위를 아름답게 수놓는 매미들을 잡는다고
뒷 동산을 헤메고 다니다 땅거미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외삼촌이 우리집에 오셔서 어머니랑 말씀중이시다.
큰외삼촌은 같은 동네에 사셨는데,
어려서부터 내 장난감(고무총, 물총, 바람개비 등...)을
자주 만들어 주셨고 내가 잘 따랐었다.
큰외삼촌이 작은 외삼촌 댁이 있는 서울에 다녀온다는 것이다.
당시 작은 외삼촌은 군대를 갓 제대했는데
신혼인 막내 이모네 집에서 기거하며, 서울 어디에선가 공장일을 하셨다.
나는 큰삼촌 따라서 서울에 한번 가고 싶다고 엄니한테 졸랐다.
엄니는 쌀 몇말을 삼촌에게 내어 주었고
덕분에 난 난생처음 서울이라는 환상의 미지의 세계로 갈 기회를 얻었다.
외삼촌의 큰딸인 사촌 동생 덕순이랑 셋이서
찌는 듯한 여름 한 복판에 서울길에 올랐다.
새울에서 안성까지 20리 길을 졸랑졸랑 걷고..안성 장날이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람들이 많다..
안성에서 버스로 무주를 거쳐 영동에 도착하니 이내 캄캄한 밤이다.
영동에서 서울 영등포까지는 야간 완행열차를 탄 것으로 기억...
아~~ 근데, 영동역에서 문제가 생겼다.
외삼촌이 우리 둘의 기차표를 사지않고 개찰구를 나가다가 덜컥 검표원한테 걸린 것이다.
난 어둠컴컴한 돼지우리같은 쇠창살의 방에 갇히게 되었다.
네살 아래인 동생은 아마도 봐준 모양이다.
순사같은 검은 제복의 그 검표원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 보였다.
쇠창살의 그 방엔 우리처럼 무단 승차하려다 걸린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삼촌은 아저씨한테 내가 일곱살밖에 안된 어린애라고 봐달라고 하면서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까지 가야하는데, 돈도 없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난 혼자 서울도 못가고 남게 될까봐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삼촌이 그 아저씨를 따라 저쪽으로 가시는데, 겁이 벌컥 났다.
큰 소리로 삼촌을 불렀다.
"삼촌~~ 우리 엄마가 삼촌한테 준 차비 있자나요!!! 그걸로 차비하면 되자나요~~~...
쌀도 한 말인가 주셨자나요^^..."
순간 삼촌은 ...허걱;;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차비를 물고, 기차 타러 가면서 삼촌한테 디따 혼났다.
난 혼나도 쌌지만, 사실 그 당시엔 시골촌넘 처음타는 기차였는데...
겁이 안난다면 그건 인간도 아니것지...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삼촌이 미리 발각대처요령을 귀뜸이라도 해 주셨으면 좋았으련만...
암튼 내 인생 보름간의 서울 첫 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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