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 기러기의 고독한 첫날 밤 -
2004. 9.11. 토요일 오후 5시 20분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KLM 조그마한 항공기가 런던을 향해 이륙 준비를 하느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또 다시 각시랑 애들 생각에 울컥 목이 메인다.
날씨는 맑지만 공항 밖의 바람은 유난히도 심하게 불어댄 하루였다.
우리의 서글픈 이별을 조금은 눈치라도 챈 듯 한두 방울의
작은 빗방울도 스쳐 지나간다.
전날 밤 한잔 술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해서인지
오늘은 그다지 할 말들이 없다.
그저 똑닥거리는 시계소리가 얄밉기만 할 뿐이었다.
애들은 철부지들이라 공항에서 간단한 점심시간에도,
식사 후의 공항 옥상 관망대에서도
그저 뛰어놀며 즈네들 놀기에 바쁘다.
몇 분 후면 아빠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바쁜 일상생활에 쫓기며, 각시없는 아니 가족없는
세월의 밤을 지내야 하는 신세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실이지 몇 번의 경험이 있었지만
공항 심사대를 통과해 들어가고 나면
다시는 나오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손만 흔들어야 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의 순간이다.
눈시울이 아니 붉어질 수가 없다. 주위의 누가 보던 말던...
오늘도 난 단두대 만큼이나 싫은 그 심사대를 들어와서도
키 큰 서양 녀석들 틈바구니에서 그녀를 겨우 찾아내
몇 번이나 손을 더 흔들고...
더는 보이질 않아 옆 유리창 너머로 몇 번을 더 찾아보다가...
이내 가족들의 눈망울만 기억 속에 묻고
얼마나 긴 시간을 띵하고 멍한 상태로 이리저리 헤메였던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기장의 화란어 안내 방송이 나오는 걸로 봐서
곧 이륙하려나 보다.
한번이라도 더 봐야지, 가족들이 있는, 앞으로 2년간이 더 지내야 할
이 네덜란드 땅을...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이 순간마저도 더는 놓치기 싫다.
이륙한 비행기가 지상을 완전히 벗어나 안개같은 구름 속에
묻힐 때까지 창문너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행기가 수평고도를 잡자 밑은 구름밖에 보이질 않는다.
황홀했던 저 발아래의 구름도 더 이상 아름답질 않다.
다시 눈앞에 먹구름이 다가온다.
혼자 2년간이나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모든 것 들이
영화 필름처럼 뇌리를 스쳐 다가온다.
아줌마 아니 할머니 같은 기내 스튜어디스가 치즈빵 한 조각에
커피 한 잔을 따라준다.
이륙한지 40여분이 지나니 런던 시내가 장관처럼 펼쳐진다
S자로 흐르는 유서 깊은 템즈감에
저녁 햇살을 아쉬워하며 유람을 즐기는
크고 작은 배들, 그 위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이들이 그리도 부러울 수가 없다.
런던 상공을 크게 한번 선회하고 히드로 공항에 착륙하니
시간은 다시 17시 30분이다. 시차가 한 시간 나나 부다.
터미널3, 4를 버스타고 왔다갔다..우여곡절 끝에
터미널 4 환승창구에서 보딩패스를 받고
21시 인천행 아시아나를 기다렸다.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
TV 앞에만 앉아 있었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공항 밖의 거무튀튀한 분위기는
울적한 가슴을 더욱 심란하게 만든다.
만사 귀찮아지고 움직이기 조차 싫다.
시간이 다 되어가자 주위에 한국 사람들이 왁자지껄 많이도 모여 든다
평소 길 좀 물으려면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이...
다들 여행에 들뜬 모습으로 초등학생 소풍가는 날
아침 같은 모습들이다.
나 같은 이런 가슴을 앉고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을까...
8시가 지나 보딩이 시작되고... 비행기 안은 이내 만원이다.
대부분 고향사람들로...
곧 이륙을 위한 우렁찬 엔진 소리가 기체를 타고 들려온다.
8,900km나 떨어진 인천까지는 약 10시간 걸린단다.
2주전 올 때에는 11시간 걸렸는데... 프랑크푸르트까지...
편서풍의 영향 탓도 있나 부다.
보딩 체킹을 해준 이쁜 파란눈의 아가씨 덕분에
창가에 자리를 잡았기에
땅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상위에 눈을 둘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직도 각시랑 애들은 같은 유럽 하늘아래 있다는 설렘도 잠시
봄날의 아지랑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그림 같은 야경의 산, 들, 강, 도로, 건물들...
이들도 이내 내곁을 떠나고...
기내에서 주는 늦은 저녁으로 비빔밥을 먹었는데 참 맛있다.
사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이미 몇 번이나 났었다.
옆자리의 또래 아줌마가 먼저 말을 건넨다.
혼자 여행중이냐구...
가족과 이별을 하고 오는 중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고1 딸아이를 영국에 혼자 두고 오는 중이라고 한다.
나처럼 2주전에 같이 왔다가 지금 돌아간단다.
맘이 무척이나 아프고 저린다고 했다.
학비가 비싸다느니 집세가 만만찮다느니...
창문의 햇빛 차단기를 내리고 불을 끄니 한밤중이다.
이어폰을 꼿고 벽걸이 TV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환데,,,그저 졸립다.
몇 시간을 자다 깨다 했을까...
도착 2시간여 전, 고비사막 상공을 날고 있다.
창문을 올리고 중국 현대음악에 다이얼을 맞추고
사막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만리장성도 보이려나...
7, 8년전 중국 유학시절...
그때도 나 혼자 3년간을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그 시절 아련했던 추억들이 작은 그림 조각이 되어
겹쳐서 펼쳐진다.
이제는, 잘난 각시가 유럽으로 유학을...
덕분에 딸애, 아들 녀석 세식구가 다 지 애비, 서방님을
한방에 버리고...생홀아비를 만들다니...
잘난 각시 덕분에 몇 년을 라면으로 때워야 하는지...
이게 인생이고, 인생은 다 그런가???
잠못 이루는 이밤도(시차 때문인지는 몰라도)
애들이 많이도 보고 싶다.
애들한테 가끔 성화를 냈던 순간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불쌍한 자존심 대결로
냉냉하게 대했던 그녀와의 시간들이 바늘처럼 아프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그땐 친구처럼 그렇게 살아야지...
- 잠 못이룬 첫날 밤 새벽에 컴퓨터 앞에 앉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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