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목) 날씨 엄청 맑고 무덥다.
벌써 6월달...날짜 흐르는 것을 모르것다. 메모 노트를 꺼내서야 오늘의 시간을 인식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2층 베란다로 햇빛이 따갑게 스며든다. 늦었다..이럴줄 알고 먹다남은 빵을 모아놓길 잘했다. 뜨거운 물에 스프를 타, 그간에 남겨둔 빵부스르기에 잼을 발라 벌써 햇살이 강한 베란다 식탁에 앉아 서둘러 아침을 마쳤다.
8시에 콜택시가 도착했다고 호텔 주인이 올라왔다. 서둘러 사모스 공항으로 달렸다. 9시 50분발 비행기라 시간은 넉넉하지만 매사불여튼튼...
바닷가에 있는 공항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시골 기차역만큼이나 한가하고 고즈넉하다. 푸른 바다가 잡힐듯 가까운 곳에 두어줄의 활주로가 있고, 창문너머 운동장엔 비행기 두어대가 대기하고 있다. 창가엔 제복입은 무장경찰이 짧은 기관총을 어깨에 메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Aegean Airline 비행기는 바닷가를 질풍처럼 달려 금방 푸른 에게해의 하늘로 솟아오른다. 비스듬히 날아 오르는 우리들의 발아래에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짓푸른 바다와 그 해안가를 따라 나있는 도로와 이쁜 집들, 야자나무들, 그리고 저 멀리 흰구름까지 한장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티켓팅을 하던 이쁜 아가씨들이 비행기에 올라 이젠 스튜어디어스로서 서빙을 한다. 그리스 아가씨들은 터키와는 달리 완전히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지녔다. 이젠 완전히 유럽으로 들어왔나보다..
비행기가 막 수평고도를 잡을 즈음, 이쁜 아가씨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비행시간 45분이라, 이륙하자마자 곧바로 착륙준비를 해야하니...언제 준비했는지 사탕과 음료, 간식을 나누어 주더니 이번엔 티셔츠에 모자를 선물로 한세트씩 준다. 30유로의 항공료에 무척 오지다는 생각이 든다.
좌석이 100여석 됨직한 작은 비행기라서 떨림이 많을 줄 알았는데, 기상상태가 좋았던지 그리 많은 떨림은 없었다. 비행기의 떨림 정도는 이젠 참을만하다. 9시55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수평고도를 잡은지 10여분, 서서히 하강을 시작하더니 정확히 10시40분에 아테네 공항에 착륙했다. 어느 역사학자가 아테네는 그리스의 눈이라고 했다는데 이제 곧 그리스의 눈 속으로 들어가 유구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볼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미리 예약한 시내 중심가의 호텔을 찾아가기 위해 공항의 여행안내소에서 지도를 한장 얻어 메트로 역으로 갔다. 이제는 그 이쁜 스튜어디어스들이 메트로 역까지 나와 메트로 안내를 하고있다. 티켓팅부터 지하철 안내까지...무슨 영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안내 덕분에 파란색 메트로를 유유히 탈 수 있었다. 도심의 변두리를 달리는 차창밖을 보니 언덕 언저리의 밭들에 올리브 나무들이 유난히도 많다. 올리브의 고향 아테네 아닌감??? 포세이돈과 싸워 이겨 아테네를 차지한 아테나 여신이 생각난다. 내 앞자리에 앉은 젊은 여대생은 중국어 노트를 열심히 읽고있다. 그리듯 쓴 한자지만 서양인치고는 제법 쓴 편이다. 유럽인이 배우는 중국어라...여러가지로 만감이 교차한다.
3,40분 달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유스호스텔같은 호텔은 침대가 2층으로 방은 좁지만 화장실도 딸려있고 네명이 쓰기엔 쾌적하고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는 애들을 끌고 무더운 아테네의 시내 중심에서 식당을 찾아 헤멨다. 아침도 빵부스르기로 부실했는데 점심만큼은 쌀밥은 아닐지라도 밥풀이라도 먹여야겠다싶어 호텔 근처를 몇바퀴 돌아 겨우 깨끗하고 쌈지막스런 식당을 찾았다. 원통형으로 빙빙돌려 기름기없이 구운 돼지고기를 썰어 케밥처럼 야채등등 빵에 싸서 먹는 "기로스", 다진고기와 의깬 감자의 토마토 "무사카", 샌드위치형 다진고기의 "수불라키" ...오늘의 선택은 베리 굿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너무나도 무더워 에어컨 빵빵하던 식당이 금새 그리워진다. 여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와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연신 물을 들이키며 유서깊다는 아테네의 고색창연함에도 취해볼 겸 지도상으로 그리 멀지않은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지만 아무리 주위의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시내의 고색창연함은 전혀 찾아볼수가 없다. 모두가 현대적인 건물들뿐이다. 어쩌다 보이는 과거의 유물같은 건물은 이미 낡고 사람의 손길이 닿질않아 도시의 괴물처럼 서있다.
그리스는 서방세계중에서 동방의 문물을 맨 처음 받아들인 나라다. 세계의 4대문명이 모두 동방에서 발생한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그위에 그들만의 새로운 신화도 만들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기원전 3,000년부터 2,000년간 키클라데스, 미노스 그리고 미케네 문명으로 이어지면서 찬란한 문화를 이뤘던 미케네인들은 철기를 다루던 도리아인들에게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지고 그후 아테네와 스파르타같은 강력한 도시국가들이 출현하면서 강성해지지만,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속국으로 떨어진 이래 유럽의 여러 민족들의 발길에 이리차리고 저리차이면서 자력으로 일어설 능력을 갖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무기력한 나라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잘사는 영, 프, 독 선진국을 따라갈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래서인지 내일 들릴 예정인 아크로폴리스 광장 주변은 어떨런지 몰라도 이곳 오늘의 시내엔 전혀 옛맛이 남아있질 않아 첨 방문하는 동양인의 마음에 일취의 아쉬움이 남는다.
벽에 낙서 가득한 벽돌담을 돌아 드디어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을 찾았다. 1891년에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신석기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까지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로 에게해문명의 미케네 출토품들이 많았다. 기원전 16세기에 만들어진 멤논의 황금가면, 아프테미시온의 해저에서 건져올린 기원전 460년의 포세이돈 청동상과 말을 탄 소년의 동상이 특히 유명하여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많다.
4,000년전의 진흙을 구워만든 항아리, 3,000여년전에 휘둘렀던 청동 칼들을 보고 있노라니 호머의 오딧세이가 들리는 듯하고 이제야 유구한 역사의 한 복판에 서있음을 실감했다.
유물들을 1,2층으로 나눠 전시하고 있는데, 2층의 도자기실과 이집트실은 들어가지 않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도자기야 항상 보고 접하던 것이고 이집트 유물이야 이미 아스완, 룩소르까지 훑고온 마당에 피곤한 몸 이끌고 다시 복습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포세이돈...제우스였을거란 설도 있다...
저 오른손에 쥔것이 삼지창 아니면 번개...그것이 문제로다..
눈이 살아 있는 듯한 제우스, 번개를 쥐고있는 그의 왼팔(BC 2세기)
말을 탄 소년
소년을 당겨봤습니다...이만엔 주름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BC 4세기)
멤논의 황금가면
밖은 오후 5시인데도 해가 중천...무더위로 숨이 헉헉 막힌다. 시원한 물 한병을 사니 금방 동이 나 버린다. 버스에 올라 두세정거장 거리의 신타그마 광장으로 갔다. 아테네의 중심 신타그마는 그리스에 있는 모든 도로의 기점으로 1843년 그리스 최초의 헌법이 공표된 것을 기념해 '헌법광장'이란 뜻의 신타그마라 불리었지만, 광장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 기원전 335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학원이 이 자리에 있었단다.
광장 입구에서 내리니 체루가스 냄새가 난다. 아주 오랜만이지만 단번에 알겠다. 분명 무슨일이 있었으리라는 것을...광장 입구에 너댓명의 경찰이 있는데, 어느 서양인이 영어로 물어본다. 그 경찰 왈...저편 어디 병원에서 나는 냄새라고 말하는데...글쎄~~
그리 크지않은 광장을 거슬러 올라가니 큰 길 뒤편에 국회의사당이 있고, 그 앞엔 전통의상을 입은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무명용사의 비가 있다. 체루가스가 더욱 진하게 코와 눈을 자극한다. 터키와의 전쟁(1923년)에서 희생된 병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커다란 비엔 전사한 병사의 상이 누워있고 그 양쪽에는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명언이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다. "영웅에겐 세상 어디든지 그의 무덤이 될 수 있다", "누워있는 용사를 위해 빈 침대가 오고 있다..."
무명용사의 비 앞에서 보초를 서는 의장병 두명은 30분마다 자리를 바꾸며 한시간마다 위병 교대식을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엔 마침 두명의 의장병이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털실 방울이 달린 부츠를 신고 발을 높이 들어 천천히 내딪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독일병정 놀이하는 아이들처럼 귀엽다.
해그름도 지지않아 호텔까지 서서히 걷기로 했다. 이젠 시내 지도 없이도 발달한 방향감각에 맡겨 호텔까지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30여분 걸어서 호텔로 가던 중에 오모니아 광장에서 아니나다를까 낯익은 복장을 한 경찰 무리와 한떼의 데모대를 만났다. 헉~~ 아까 그 체루 가스가 저들 때문이었나??
아까 그 경찰이 하던말중 hospital, smell을 내 귀로 분명히 들었는데...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그리스말은 전혀 예측조차 할 수가 없다. 월급을 올려 달라는 건지, 자유와 평화를 달라는 건지...
오모니아 광장 근처에 있는 큰 슈퍼에 들려 통닭 한마리와 빵, 오이와 사과를 사들고 호텔에 돌아와 방가운데 탁자 끌어다 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그렇게도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내일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고 왼종일 걸어야 하기에 오늘밤은 일찍 쉬었다.
신타그마 광장...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무명용사의 비 앞에서
애들은 신기한 것만 보이면 피로도 잊는다.
쉴때에도 항상 공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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