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따가운 날씨, 적도의 나라도 아닌데 무척 덥다
이번 여행의 두번째 밤버스...이젠 이것도 적응해 가나보다.
한잠을 잘 자고나니 새벽 5시반.. 훤하게 동이 틀 무렵, 버스는 벌써 데니즐리 간이 정류장에 우리를 남긴 채 미련없이 떠나버린다. 여행사에서 마련해준 폭스바겐 봉고가 나와 기다리고 있다.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10여분을 달리니 사뭇 낯익은 시골 마을이 나타난다. 여행사와 연결된 호텔에 들어와 컵라면으로 퍼석한 속을 채우고 샤워를 하고나니 밤버스로 찌뿌둥했던 몸이 그냥 녹는다.
한적한 파묵칼레의 시골풍경은 나의 살던 고향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기와집 마당 한켠에 누워있는 누런 개는 따사한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고, 붉게 물든 석류꽃 돌담 넘어 텃밭에선 아낙네의 바쁜 손길도 영락없는 우리 시골이다. 짓푸른 미류나무 꼭대기에선 시원한 매미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석교수님 내외분은 동네 한바퀴 돌고 오시더니 한국의 시골마을에 온 것 같다고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누런 밀밭으로 둘러쌓인 이 마을은 무화과, 뽕나무, 석류나무, 유도화 등으로 짓은 푸르름속에 붉은 기와집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유도화란 꽃나무를 유럽에서 처음 봤는데, 버드나무와 복숭아를 접목하여 탄생시킨 나무라고 석교수님이 자세히 설명해줬다. 길쭉한 버드나무 잎에 붉은 복숭아꽃을 마니 닮아있어 참으로 예쁘다. 번식력이 좋은데, 독성이 강해 꽃가루 같은게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자, 이제 기독교의 성지이자 신화의 무대이기도 한 고대 로마의 도시 히에라폴리스와 세계 각지에서 신경통과 피부병을 낫기위해 모인다는 석회붕의 온천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우리팀만을 실은 봉고는 100여 가구나 됨직한 동네 끄트머리 어느 호텔에서 보기드물게 이쁘고 잘생긴 일본 젊은이 한쌍을 태웠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3년 넘게 유학중인 이들은 부부 사이란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기원전 190년에 로마의 페르가몬 왕국의 실질적인 창건자 텔레포스 왕의 아내 히에라를 기리기 위해 엔메네스 2세가 세운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제국의 시절 로마황제가 거느린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지금의 마을 뒷산에 목화송이로 만든 성같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파묵칼레(Pamukkale)는 목화성(cotton castle)이란 터키어란다.
북쪽 넓은 들판에 여기저기 흩어져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1,200여개의 무덤들...고인돌 같은 돌무덤에 왕릉같은 거대한 봉분까지 크기와 모양도 각양각색인 무덤의 잔재들이 들어서는 관객을 압도한다.
이 도시는 기원전에 있었던 대지진에도 끄떡없었으나, 1354년도의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단다. 거대한 목욕탕도 지진으로 갈라지고 수로가 끊겨 교회로 사용됐고 신전이나 아고라의 상가들이 부서져 내려앉아 지금은 그 조각들만 남아 있다. 그야말로 여기저기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고대 로마의 문화이자 유물이자 역사 그 자체인 돌덩어리들을 밟고 만지고 앉을 수 있는 야외 박물관이다.
아고라의 넓은 들을 빠져나와 호텔온천장이 있는 마을 뒤 언덕엔 성경에서도 언급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악마의 굴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굴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오질 않았다. 화산활동으로 인해 풀루토니윰 유독가스가 끊임없이 솟아나왔던 굴은 지하의 세계를 관장하는 플루토(그리스의 하데스)의 세계라 믿었다. 훗날 영적인 수련을 마친 수도사가 호흡법을 통해 굴속에 들어갔다 살아 나왔다는데, 지금은 굴을 막아 아무도 못들어가게 한다.
이 도시는 신약성서 골로새서의 도시이기도 하다는데, 언덕위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영생을 얻고 하늘 나라에 들리라!!" 외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한 사도 바울을 기리기 위해 지은 교회가 있고, 사도 요한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한 성지이지만, 그 언덕 아래엔 아폴론의 신전 등 그리스의 신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기도 하다.
어느 신이 진짜 신인지는 몰라도 신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고로 우리들의 발은 편하리니...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1만5천명의 관중을 수용할수 있었던 원형극장의 돌 계단, 물길이 끊긴지 오래지만 아직도 하얀 물이 흐르는 듯한 화강암의 수로 들,,, 수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며 시계바늘을 2,000년쯤 뒤로 돌리니 사도바울의 외침소리, 검투사의 기합소리와 원형 극장안의 관객들 함성소리가 후덥지근한 오뉴월을 벌겋게 달군다.
파묵칼레의 시골마을..
기와지붕과 돌담장이 있는 텃밭이 우리의 시골처럼 정겹다.
긴 수로를 따라 마을로..
도시 아래에 있는 언덕에 눈을 돌리면, 북극의 눈처럼 희고 고운 석회붕들이 겹겹이 옥빛 온천수를 머금고 흐른다. 1,800여 미터의 산위에서 수천년을 두고 흘러 내려온 석회 성분(산화칼슘)의 물이 고인 자리가 움푹 패인 석회층에 섭씨 35도의 온천수가 흘러 연초록색의 천연 노천탕을 연출한다. 구슬처럼 푸른 옥빛 온천수가 몸에 좋은 미네랄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심장병등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차림으로 온천욕을 즐기고, 고대 로마의 황제들도 신경통 치료를 위해 자주 온천욕을 이용했단다.
사실, 과거엔 온천물이 풍부해 수영장을 갖춘 호텔들이 즐비했었는데, 지금은 물이 부족해 온천욕을 즐길수는 없고 일부 개방된 수로를 따라 발을 담그며 무릎까지의 온천욕을 즐긴다.
특히, 이 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면화의 하얀 순결성을 닮은 이곳에서 온몸을 깨끗이 닦고 시집을 갔단다.
배고픔도 잊고 물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와 어느 뷔페식당에 들어갔다.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두세번 날라다 먹었다. 한여름만큼이나 푹푹 찌는 날씨에 시원한 <Efes> 맥주 한잔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던 나의 갈증을 원초적으로 해결해주었다. 석교수님 댁도, 그 일본의 젊은 부부들도 같이 한잔...
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시원함!!!
식사후에 들른 카라헤이트 온천은 섭씨 65도의 물이 올라오는데, 먹을 수도 있고 피부병치료에도 뛰어나 현지 의사들도 이 물을 이용한단다. 여자들은 무더운 날씨에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 진흙을 무릎까지 끌어 바른다. 피부가 고와진다니 이뻐진다나....헐~
오늘 저녁엔 쿠사다시까지 가야한다. 내일은 기독교의 성지 에페스(에페수스)를 보고 에게해를 거쳐 그리스의 사모스 섬으로 들어가야 하기때문에...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큰 버스로 쿠사다시까지는 4시간 정도 가야한다. 석교수님댁과 일본의 젊은이들도 지금까지는 같이 한차로 움직이니 더욱 기뻤다. 알바로 돈벌어 휴학중에 혼자서 여행중이라는 부산의 여대생 한명도 우리 뒷좌석에 앉아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을 황홀지경이라 표현하며 애찬한다.
편도 2차선의 쭉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전혀 낯설지가 않다. 누런 밀밭과 푸른 논, 시원하게 뻣은 이태리 포플러, 저편 산자락에 붉은 벽돌과 기와집이 있는 마을들...
야산엔 이슬맞은 색깔의 뿌연 올리브나무들과 가끔 지나는 낯모른 도심에 통통한 소나무 가로수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한국의 수원 어디쯤의 도로로 착각할 뻔 했다.
저녁 8시에 셀주크에 도착했다. 셀주크는 에페스(에페수스)가 있는 도시다. 이곳에서 우리식구만을 남긴채 모두 내렸다. 무척이나 서운하고 섭섭하다. 우리의 호텔은 여기에서 30분쯤 떨어진 쿠사다시에 있다. 석교수님도 쿠사다시에서 묵는다는데, 여기서부터는 따로 움직인다. 우리의 여행사는 우릴 호텔까지만 안내하면 끝나고 이제부턴 우리 스스로 알아서 해야한다. 헌데, 석교수님은 그리스까지 여행사의 일정에 따라 움직인단다.
해질녘 도심 중앙의 높은 언덕에 우뚝솟은 셀주크성을 뒤로한 채 우리 네식구만 유난히도 쓸쓸하게 쿠사다시로 향했다. 우리네 산과 똑같은 이쁜 산을 오르니 검푸른 에게해 넘어로 석양이 붉게 물든다. 쿠샤다시에 도착하니 호텔 사장이 직접 승용차로 마중을 나와 기다리다 반겨맞는다. 호텔에 도착해 석교수님이 "Grand..불라부라 호텔"이라 해서 그랜드로 시작하는 호텔들을 수소문한 끝에 결국 연락이 되어 알아보니 택시로 30분 거리에 있단다. 헐~~
같이했던 여행의 마직막 밤이라 더욱 보고 싶었었는데,,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바로 헤어져야 할 운명임을 알면서도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갈 때엔 무척이나 섭섭하고도 아쉬움이 남는다.
내일 에페수스 고대 유적지에서 만날 수도 있다는 말에 일말의 서운함을 달랬다.
호텔 근처의 "7 yedi 24" 식당의 영어를 잘하는 젊은 종업원은 참 친절하고 애들하고 장난치기도 좋아한다. 테라스에 앉아 이국의 정취에 취하고 한잔의 맥주에 취해 매콤한 칠리소스의 양고기를 달게 먹었다.
셀주크의 정류장에서 본 해지는 셀주크 성..
'여행은 즐거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테네에서의 첫날 (0) | 2006.06.01 |
---|---|
에페소스에서 그리스 사모스 섬으로 (0) | 2006.05.31 |
벌룬을 타고 카파도키아 계곡을... (0) | 2006.05.29 |
절경의 카파도키아 계곡으로 (0) | 2006.05.28 |
이스탄불 시내 구경을 마치고 밤버스를 타다. (0) | 200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