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수) 시원한 그늘밑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항구도시 쿠사다시의 밤은 싱그러웠다. 어렴풋한 꿈에서 깨어나니 아침 7시...
호텔앞마당 풀장 옆에서 빵과 토마토, 오이와 야채, 맛좋은 올리브열매, 그리고 모닝커피 한잔을
기울이는 사이에 저 멀리 다가오는 아침햇살이 상쾌하다. 벌써 검은 짚프 한대가 도착해 우릴
기다린다.
짐을 챙겨 짚프에 싣고, 어제 왔던 길을 거슬러 셀주크 시내 가까이에 있는 고대의 도시 에페소스
(에페스, Efes)로 향했다.
오늘이 터키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고,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오늘의 가이드는 허연 머리에 턱수염도 희끗한 일흔은 된 듯한 할아버지...큰 물병을 하나 차고,
손엔 뭔가를 싼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있다.
우리 네 식구만 단촐하게 가이드를 받으니 오지다는 생각이 든다.
에페스 고대도시를 들어가는 입구는 두개다. 산을 돌아 항구 반대편의 입구로 들어가자 커다란
대리석의 기둥들이 부서지고 토막난채 도열해 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첫눈에 아고라임을 알 수 있었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반원형
부채꼴의 의회터, 아직도 원형 그대로의 돌계단이 로마의 무슨 경기장을 연상케한다.
할아버지 가이드는 들고온 봉지에서 고기 몇점을 꺼내 주인없는 들고양이에게 먹여준다.
물도 돌계단위에 따라 주니 떠돌이 고양이가 목이 말랐는지 깨끗이 핥아 먹는다...
에베소스는 한마디로 장엄한 고대 역사의 살아 숨쉬는 서사시다.
로마 포럼을 본적이 있지만 이보다 더 역사의 현장이 생동감있게 눈앞에 다가온 적은 없었다.
세계적인 고대도시 에페소스는 기원전 3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휘하의 장수가 피온산 계곡에
세운 도시다.
그후 그리스의 페르가몬(성서의 버가보)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33년부터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로마제국의 아시아 수도를 페르가몬에서 에페소스로 옮길 정도로 번영의 길로 들어선다.
씨이저가 죽은후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대치할때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한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엔 더욱 번성하여 세계 5대 도시중의 하나로 인구 25만명의 대도시가 되었다.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멀리 로마에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 사실은 로마의 수도 이곳에서 시작했다고
가이드는 침을 튀긴다.
가이드의 에페소스 역사 이야기는 전설처럼 끝이없다.
기원후 1세기에는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그의 제자들은
예수의 사상을 전파하고자 죽음을 불사하고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도 이곳에서 시작한다. 언덕위 높은 곳에 교회를 세우고 "신은 하나다..고로
다른 신은 신이 아니다..." 외치다가 "뭔소리여~ 시방??? 우린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고 있는디..."
그러다가 이곳에서 간신히 목숨은 구했으나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때 에페소스 교인에게 쓴 옥중편지가 신약성서의 에베소서다.
사도 바울이 순교하자 사도 요한은 그의 뒤를 이어 에페소스의 복음을 책임졌고,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와 이곳 에페소스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요한복음을 남겼다.
고대 도시 에페소스는 사도 바울의 선교가 있기 전에는 아르테미스를 주신으로 많은 신전이 있었다.
오후에 들린 에페소스 박물관에서 만난 아르테미스 여신은 "풍요와 다산의 신"답게 많은 유방과
아들들을 갖고 있었다.
상업을 중요시않는 기독교도들이 늘어나면서 상업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홍수등으로 산위의 토사가
흘러 도시가 침식되어 항구가 4km나 밀려 나가면서 에게해 연안의 항구도시로서의 기능이 사라졌다고
가이드 할아버지는 꽤나 애석해한다.
그리하여 한때 세계적인 대도시 에페소스는 서서히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비잔틴 시대를 거치고 끝내
1천년이나 진흙속에 묻혀버렸다고...
1,900년대 초부터 도시의 잔해가 발견되면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터키의 경제사정과
연일 수천명씩 몰리는 관광객 덕분에 발굴작업은 지연되어 우리가 현재 접하는 유물은 고대 도시
에페스 전체 유물의 5%밖에 되지 않다는 가이드의 말은 거짓말같은 사실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몰린 기독교 성도들, 학문하는 사람들, 우리같은 떠돌이들 할것 없이 그 넓은 아고라가
명동의 뒷골목 같다. 폼잡고 젊잖게 사진 한장 찍을 수가 없다.
아고라를 따라 내려가면 판테온 신전 등 부서진 신전들의 건물 기둥들이 색바래 누워있고, 저만치
떨어져 누워있는 역사의 유물엔 이끼가 끼어있다.
오늘날의 약국 표시와 같은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대리석, 뱀이 감고있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조각된 대리석 기둥으로 보아 병원으로 추측하는 부서진 건물, 예술가들이 거주했던 비탈 집들,
냉탕.온탕.증기탕까지 갖춘 대형 목욕탕 등은 보는이로 하여금 끊임없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사방으로 둘러앉아 일을 볼 수 있는 공중화장실은 우습고도 재미있다.
아고라의 저 끝에 그리스풍의 우뚝 솟은 기둥은 이곳의 백미 셀수스 도서관이다.
지금은 네명의 여신상이 있는 정면의 기둥만 썰렁하게 남아있지만, 당시엔 1만2천권의 장서를
소유한 세계적인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정문에서 기다리던 가이드는 맞은편에 창녀촌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각시 몰래 나한테만 눈을 찡긋거린다. 헐~~울 각시 그런거 별로 안따지는데...ㅎㅎ
부서진 작달막한 방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다. 창녀촌의 입구 대리석 바닥에는 사람의 발 모양의
그림이 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그림 광고란다.
"이 발보다 작은 발의 사람은 창녀촌에 들어올수 없습니다..." ..ㅋ
그럼, 이 발보다 큰 사람은 들어가도 된단 말인가?? 헐~~
아케이드란 어원이 생긴 아카라이드 시장, 이곳에선 노예도 매매가 되었단다.
그 당시 돈많은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눈동자가 이쁜 노예한테 몰래 찐빵이랑 고구마랑
갖다주고 그랬을텐데...마눌한테 곤장맞을 쓰잘데없는 생각도 스친다.
에게해의 항구에서 들어오는 길 정면 산기슭에 한번에 2만5천명을 수용하는 찬란한 대리석의
대형극장이 있다.
이 곳도 돌계단의 밑을 안쪽으로 파놓아 소리의 울림을 이용해 뒷좌석까지 들리게 했단다.
돌계단에 앉아 허리춤에 찬 시계의 시침을 몇바퀴 뒤로 돌리니... 먼 옛날 그림같은 항구에 크고 작은
배들이 푸른물결에 출렁이고 닻을 내린 뱃사공들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
가이드의 지저귐은 전혀 귀에 닿지 않는다.
소나무 숲길을 걸어나가니 밖엔 스웨덴 국왕이 왔다고 경찰들이 분주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습지대의 초원위에 뎅그러니 기둥하나...
127개의 기둥중 겨우 남은 한개의 꼭대기엔 황새가 집을 짓고 살고있다.
70x100미터의 잡초 무성한 신전터는 고대 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하다.
멀리 600여년전의 모스크 뒤로 언덕위에 셀주크 성이 보이고, 그 아래 성 요한의 무덤위에 세웠다는
성 요한 바실리카(교회)가 희미하게 보인다.
짧은 시간의 여정속에 모든 것을 묻어야만 하는 아쉬움에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도 잊었건만,
애들은 벌써 커다란 뽕나무 그늘 밑에서 하얀 오디를 즐긴다.
우리동네 오디는 까맣게 익는데, 여기 오디는 푸른빛을 띠는데도 달고 맛있다.
로마의 의회..들고양이도 함께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배아픈 이강이좀 낫게해주셈~~
분수와 신전들이 모여 있던곳
셀수스 도서관
공중화장실...저 구멍 밑엔 3~4미터의 공간이 무신 용도인진 모르지만...
이강아~ 거긴 돌멩이를 집어 넣는 곳이 아니란다..ㅋ
대리석위에 새겨진 세계 최초의 그림 광고
아르테미스 신전터...멀리 셀주크성과 오른쪽으로 성 요한 교회가 보인다.
이곳 고대도시에서 10여분 산길을 달려 올라가면 산 중턱에 현대적으로 지은 벽돌집이 나오는데,
성모 마리아의 집이다. 원래 붉은 벽돌만 조금 남아 있어 복구했는데, 이집이 정말로 성모 마리아가
살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가이드가 덧붙인다.
1878년 독일의 캐더린 수녀가 꿈속에서 계시받은 내용을 책으로 펴냈는데, 그후 나자렛 신부가
탐사반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보니 캐더린이 계시받아 기록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한다.
이상하게도 세개의 샘이 있는데 이물을 마시면 영리해지고 건강해지고...
한술 더뜨는 것은 하얀 종이를 돌담에 꼿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나 어쩐다나...
신화의 영향이었을까...점장이의 집같은 예수 어머니의 집이다.
수많은 가슴을 달고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과 창.칼에 찔려 쓰러진 검투사들의 머리, 어깨뼈 등이
인상깊은 조그만한 에페소스 박물관을 끝으로 터키를 떠나기 위해 쿠사다시 항구로 향했다.
아름다운 산천과 역사가 곁에있는 이곳 터키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아직도 유물 한조각 더 만져보고 싶고, 신화와 역사 한편 더 듯고싶다.
한나절 남짓 일정으로 이 많은 유물과 역사를 접한다는게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제 헤어진 석교수님 내외를 이곳 에페스를 돌면서 만날까 했었던 꿈도 산산이 조각난지 오래,
아쉬움을 더했다.
성모 마리아의 집
에페소스 박물관에 있는 귀여운 진흙 인형...어느 귀족부인이 가지고 놀았을 놀이개
가슴이 많이 달린 아르테미스 여신상
국경선을 넘기전에 터키의 돈은 환전을 해야 하기에 각시가 갖고 있는 85리라를 환전하러 뒷골목
바자르에 들렀는데, 별로 큰돈도 아니고 그냥 기념품 몇개 사버리고 말았다...
호박이 달린 어느 금목걸이를 몹씨도 아쉬워하는 각시의 심정을 시간없단 핑계로 서둘러 묻었다.
사실, 터키의 세공기술은 뛰어난데다, 물가도 싸서 목걸이 하나 장만해도 괘안을듯 싶기도 했는데...
이곳 터키의 쿠사다시에서 그리스의 사모스 섬까지는 그리 멀지않다.
군산에서 장항가는 배를 타는 것처럼 간단한 수속으로 여객선에 올랐다.
갑판 위엔 젊은 서양인들은 벌겋게 몸을 달구며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의 열기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저들의 피부는 우리네와 많이 다르니까 햇볕을 많이 받아 둬야것쥐...
어느새 우리의 배는 군청색의 물감위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고향같은 터키를 뒤로하고
에게해 저 멀리 나아가고 있다.
오래전 중국 상해에 유학할 때의 일이다. 기숙사 헐음한 방에 터키의 젊은이 혼자서 살고 있었는데,
아르메니아 친구들이 무척이나 싫어하길래 같이 왕따를 시켰던 기억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토록 아름다운 산하가 있고, 수천년의 과거와 현재를 타임머신 없이 들락거릴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았다면 맘씨 또한 악할수 없었을텐데...진즉 알았더라면 좀더 다정해질 수 있었으련만...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크레타섬 미노스왕의 궁전 지하에 사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섬을
지키는 청동로봇의 눈과 귀를 피해 자신을 구해준 공주 아리아드네와 함께 몰래 섬을 빠져 나온다.
꿈속에 나타난 디오니소스 신의 계시로 아리아드네를 중간 낙소스섬에 홀로 남겨놓고 슬픔에 쌓여
정신없이 아테네로 돌아오면서 돛에 무사함의 표시로 흰돛을 달기로 한 약속을 깜박 잊었다.
검은돛을 본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은 "아들의 운명은 곧 나의 슬픔..." 홀홀단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 바다가 바로 이 바다...그리하여 이 바다를 에게해라 부른다고...
유난히도 검푸르다.
중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손가락에 묻혀본 짙은 청색의 잉크를 바다에 쏟아부은 것 같다.
그리스의 영토 사모스 섬에 도착할 때까지 한시간 반 동안 선미에 서서 부서지는 파도에 넋을 잃고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포세이돈이 지키고 있을 이 검푸른 바다에서 상상의 날개는 벌써 어릴적 함께 놀았던 올림프스의
신화 속으로 빠져든다.
간단한 짐 검사와 입국 절차를 마치고 선착장에 내리니 호텔의 젊은 사장이 직접 차를 몰고나와
우릴 기다린다.
초행길인데다, 짐도 있다는 각시의 멜을 받고 사장님이 친절하게도 낯선 동양인들을 마중나온 것이다.
그리스에서 닷새간 쓸 양으로 340유로를 인출하니 맘도 든든...
이곳 사모스 섬은 아테네로 가기위해 중간거점으로 도착한 것... 내일 아침 일찍 아테네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바닷물이 발아래 출렁거리는 호텔 테라스에 앉아 바다멀리 이름 모를 섬으로 떨어지는 낙조속에
그리스의 술 우조(Ouzo) 한잔과 미토스 맥주로 그리스의 첫날 밤을 맞았다.
"칼라마리"는 우리네 오징어 튀김이다. 쌀과 다진 고기등을 토마토 안에 넣고 찐 "스텁 토마토"는
난생 처음 먹어봤는데 무척이나 맛있다.
옆자리 스위스에서 왔다는 노부부가 먼저 말을 건다. 우리랑 같은 배를 타고 건너왔다는 그들은
14일간 그리스의 이곳저곳에서 휴가를 보낸단다.
에게해의 서쪽 하늘의 노을은 사라지고 빈 맥주병만이 까만 밤을 지킨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저물었다.
사모스섬에서 떨어지는 낙조를 보며...
43도의 알콜에 물을 타서 마시는 우조...달콤한 레몬즙을 몇방울 떨어뜨려..
'여행은 즐거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돌고... (0) | 2006.06.02 |
---|---|
아테네에서의 첫날 (0) | 2006.06.01 |
파묵칼레의 비경 속으로 (0) | 2006.05.30 |
벌룬을 타고 카파도키아 계곡을... (0) | 2006.05.29 |
절경의 카파도키아 계곡으로 (0) | 200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