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토 뜨거운 하루
헤이그의 아침은 선선한 가을 날씨를 마니 닮아있다. 한 낮엔 덮지만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하고
아침 저녁으로 부는 시원한 북쪽의 바닷 바람은 오히려 서늘하기까지 하다.
이번 여행은 꽤 길고도 바쁠거 같다. 지난 1월 이태리에 갔을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빼먹은 베네찌아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빈과 짤츠브르크, 뮌헨에서 비행기 타고 러시아 모스크바, 생떼 페떼스브르그에서
기차로 핀란드 헬싱키, 유람선으로 스톡홀름, 기차로 코펜하겐을 거쳐 비행기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영어가 안통한다는 뻣뻣한 나라 러시아가 끼여있어 못내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출발은 여유로웠다.
오전 11시에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무척이나 붐빈다. 본격적인 휴가철인가보다.
자동 체크인 기계로 체크인을 마치고 큰 가방 두개를 화물로 보내려 줄을 섰는데, 한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첫 목적지가 베니스인 만큼 보안 검색을 마치고 자투리 시간에는 애들에게 햄릿의 "베니스의 상인"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150석 항공기가 빈틈이 없다. 트란사비아 에어라인 네덜란드 항공기는 유럽여행에서 몇 번 이용했던
친숙한 항공기이다.. 쾌청한 날씨 덕분인지 두세번 약간의 롤링이 있은 후 1시간여만에 이태리 북부
트레비조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니 오후 3시가 좀 못되었다.
아담한 공항을 빠져나오니 공항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승객이 이 버스로 베네찌아로 향한다.
고속도로같이 곧게 뻗은 도로와 낯 설은 마을을 몇개나 지났을까...바다를 가르며 섬을 연결하는 긴 다리 위를 달린다. '자유의 다리'라 불리는 이 다리 양 옆으로는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도 보인다...
섬의 도시. 호반처럼 펼쳐진 물의 도시 Venezia가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겐 베니스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베니스는 100여개의 섬, 170여개의 운하,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진 인구 25만의 도시다.
베니스 공국은 중세에 이르러 막강한 힘을 과시한다. 지중해와 콘스탄티노플까지 장악하고, 동방무역을
독점하다시피하는데, 특히 이슬람교의 세력으로 동방무역에 큰 손실을 입자 로마 교황청을 부추겨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역할도 한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갔을 때에도 파르테논
신전을 이곳 베네찌아 군이 부셔버렸다고 해서 무척 아쉬워했던 기억도 있다.
라폴레옹에게 정복당하면서 세력이 약해져 1866년 이탈리아 통일국가에 합병되어 오늘에 이른다.
길게 휘어진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 바로 로마광장..이곳에서 모든 차량들은 멈춘다. 베니스에서는
차량이 다닐 도로가 없다. 모두가 골목길로 이어지고 골목길을 따라 난 운하 위로 여러 종류의 배들이
다닌다. 수상버스, 수상택시, 자가용 배들...
우리가 "섬"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올릴때면 바닷가 선착장이 있는 마을이 있고 뒤에는 뾰족한 산이
있는 걸로 생각하는게 보통인데, 여기 셀수도 없는 많은 섬들은 한결같이 산도 없는... 바다위에 집들과 다리와 골목길들을 만들어 놓은 그저 평원이다. 길위엔 나무와 정원도 가꾸어져있고...
로마광장에서 우리가 묵을 Ai호텔까지는 작은 운하의 다리 두개를 지나 5분 거리에 있었다.
호텔방은 서구식 아파트로 창고까지 딸려있는 널찍한 방..침대가 싱글로 네개..트렁크를 들어
올리느라 땀에 젖은 상의를 물에 주물주물...창가에 널어두고 시내구경에 나섰다.
갑자기 지난 1월 이탈리아에 같이 왔었던 처형네가 생각난다. 그때 이곳을 같이 구경하지 못해 각시가 무척 아쉬워했었는데...멋진 운하위로 구름처럼 드리워진 다리를, 그림같은 집들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난다..(담에 만나면 자랑 엄청 해야쥐~~하긴, 나폴리도 아름다운 도시였으니...)
배 버스라고 해야하나, 아니 버스 배라고 해야하나..."바포레또(Vaporetto)"라 불리는 바다 위를 달리는
수상 시내버스 82번을 타고 운하를 따라 베니스의 심장인 산마르꼬 광장으로 향했다.
24시간 이용권(12유로)을 끊었으니 아무때고 탈수있어 좋다. 뱃길 양 옆에는 4~5층 높이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빈틈없이 붙어있는데 물위에 바로 건물의 1층이 붙어있다. 어쩜 저렇게도 물위에다 집을 지어놓고 살수있는지 참으로 궁금하기까지 하다.
근데, 운하를 달리던 시내버스가 갑자기 운하를 벗어나 바다로 나간다...아니~~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탄 것이다...하지만 어짜피 돌고 도니까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목적지에 도착하긴 매한가지...
덕분에 건너편 섬까지 갔다오는 행운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정류장에 내려 광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려 명동의 인파는 저리가라...
애들 잃어버릴까봐 녀석들 꽁무니 쳐다볼랴, 황홀한 운하의 풍광을 감상하랴, 고색창연한 중세의
건축물들 올려다보랴, 지나가는 이쁜 여자들 쳐다보랴(이쁜 소매치기가 특히 많으므로...ㅎㅎ)...
눈동자가 엄청 바쁘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네모난 광장 주변엔 수천마리의 비둘기들이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찾아
시꺼멓게 날아다닌다. 아이들은 옆에 서있는 건물들의 역사스러움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비둘기밥을 사달라고 조르기만 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두깔레 궁전, 마가복음의 주인공 마가(마르꼬)의 시신이
안치된 성마르꼬 성당은 내일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종루도 내일 오르고...
주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들은 많은 카페와 상점들이 있는데, 1720년에 개업한 플로리안 카페는
바이런, 괴테, 바그너 등 유명 인사들의 단골 다방이었다고 하는데 찾아보는 건 포기했다.
아드리아해와 어우러진 광장은 그저 눌러 앉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라폴레옹도 이곳에 반해 이
광장을 '유럽의 응접실'이라 불렀다다...
광장 뒷길을 들어서니 좁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은 이골목
저골목 어디나 만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골목 하나 이국의 맛으로 멋지지 않은 곳이 없다.
골목길 어귀에 붙여놓은 길 표지판을 따라 레알토 다리로 향했다. 레알토 다리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사진 찍기에 바쁘다. 물이있고 다리고 있고 이쁜집이 있으면 여지없이 사진찍는 사람들로
붐며 자리잡기가 어렵다. 사진 찍고 즐기는 모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가보다.
수상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 저녁 일찍 먹고 밤경치를 보기위해 다시 나오기로 했다. 베니스의
운하중에 S자로 흐르는 가장 큰 대운하가 지나가는데, 이곳에서 호텔까지는 바로 대운하를 따라가다
로마광장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가는 길에 황금으로 건물을 장식했다는 황금궁전 "카도로"도 보였다.
아침에 준비한 주먹밥에 한국산 깻닢...너무 맛있었다. 저녁 9시...티비를 켜니, 독일과 포르투갈의
월드컵 3,4위전이 시작됐다. 예륀이는 방에서 그냥 축구나 보자고 성화다. 친구 마리아인가 누가
독일인이라고 독일을 응원해야 한다네...일찍 들어와서 후반전 보자고 꼬셔놓고 밖으로 나가 다시
82번 수상버스를 타고 운하의 이곳저곳을 두러보며 성마르꼬 광장까지 야경을 즐겼다.
수상가옥들은 물꺼진 집들이 많다. 위험해서 그런지 사람이 살지 않는거 아녀??? 일년에 한두차례
홍수도 난다고 하니...
지구 온난화에 해수면이 상승하고 더군다나 지반침하로 도시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하니 멋진
도시가 제발 사라지지 않기를 빌 뿐이다..
돌아오는 길은 1번 버스를 탔는데, 헐~~이넘의 버스는 역마다 다 선다..예륀이는 후반전을 못본다고
애가 달아 죽는다. 복창터져 죽갔다..워~메... 환장하것는거...;;
사실, 나도 축구를 엄청 보고싶었지만, 베니스의 야경을 오늘 안보면 언제 다시 보겠나 싶어...어쩔수
없이 나갔었는데...일찍 돌아와 후반전은 봐야한다는 강박감 때문인지..야경도 제대로 못본거 같다.
후반전 끝날 시간이 다되었는데...마냥 느린 1번 바포레또 안에서 열받아있는 예륀이한테 미안했다.
좀 기다렸다가 82번 탓으면 벌써 집에 도착했을지도 모르는데... 먼저 온 1번에 덥썩 올랐으니...
우리방에 들어오니 밤 11시 15분이다. 티비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니 다행이도 독일이 이겼다네...
아직도 삐져있는 예륀이를 위로했다.
헐~~언제부터 울 예륀이가 이토록 축구에 목을 매었남...
여행 첫날 밤은 베니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베개삼아 그렇게 잠이 들었다.
오른쪽에 호텔 건물이 있습니다..호텔에서 나와 조그만 운하를 배경으로...
긴 다리가 바로 자유의 다리...
82번 바포레또..앞좌석에 자리를 잡았슴다.
노란색 줄이있는 것이 정류장..우리배가 다가서자 사람들이 배를 타러 나오네여..
배마다 만선입니다..
창문 두개가 난 앞쪽의 다리가 "탄식의 다리"
이 다리를 건너 지하감옥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어 죄수들이 한숨을
지으며 건넜다하여 이런 별명이 붙었다네여..
플레이보이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넜었다고..
성마르꼬 광장에서...오로지 자연과 동물만을 사랑하는 철없는 아이들..^^
일반집
야간에 다시 선 광장
'여행은 즐거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의 도시 빈과의 첫 만남 (0) | 2006.07.10 |
---|---|
베니스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0) | 2006.07.09 |
여름방학, 그리고 또 먼 길을... (0) | 2006.07.07 |
크레타 공항에서 집으로 (0) | 2006.06.05 |
크레테 섬에서의 하루 (0) | 2006.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