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월) 날씨 화창
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한잔 한 덕에 푹 잤다.
느긋하게 일어나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니 엊저녁 우리 방문앞에서 만난 핀란드 할아버지가 혼자 커피를
마시다가 아는 체를 한다. 할아버지는 오늘 산토리니로 떠난다고...
어제밤 늦은 시각에 우리 방문앞에서 저 할아버지를 마주쳐을 때에는 거나게 취해, 먼저 말을 걸면서
횡설수설 서로 신나게 떠들어댔뎄는데, 맨정신에 다시 만나니 좀 쑥쓰럽구먼...
일흔쯤 되어 뵈는데 무슨 사연으로 혼자서 긴 여행을 즐기시는진 모르지만, 부디 건강하게 다니시길...
버스타러 큰길가로 나가면서 예륀이는 어제 못산 그 귀걸이를 반드시 산단다.
싸구려 잡화상이 버스정류장 가는 길목에 있지만, 예륀이는 저때문에 차를 놓치면 안된다고 우리보다
먼저 저만치 앞서간다. 상점이 아직 열지 않았으면 어쩔까 걱정이 태산인 채로...
다행히 상점은 문을 열었고, 기어이 저를 닮은 파란색 링이 큰 귀걸이를 1유로인가에 사서 나온다.
크레타 섬이 꽤 큰 편인데다 관광객이 연중 들끓어서인지 공항은 생각보다 크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2층 출국장으로 올라와 의자위에 가방들을 올려놓고 쉬었다. 애들과 엄마는 또
쇼핑을 한다고 3층 면세점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고...
주위가 밀려오는 관광객들로 바글바글 넘치고, 앞뒤옆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이 혼돈스레 나뒹군다.
창문너머 저 편엔 푸른 파도가 손에 잡힐 듯 널심거리고, 안개속에 쌓인 듯 잿빛 섬들이 희미하다.
모래사장 같은 활주로를 그림처럼 내려앉고 뜨는 비행기... 언제 다시 이 섬에 올 수 있으려나...
10시반에 보딩이 시작되고 Transavia 646 네덜란드 비행기에 올랐다. 이곳에서 스키폴까지는 세시간반...
무슨 말들인지... 낯익은 dutch가 들리기 시작하고 벌써 고향에 온 듯하다.
좌석을 꽉 채운 비행기의 굉음이 울리고 서서히 활주로에 들어서는데, 햇빛에 반사되어 유난히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위로 갈매기가 평화롭게 날고있다.
푸른 바다위로 이어지는 구름의 평원은 오뉴월 뜨거운 태양으로 목화솜처럼 피어오른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 가면, 어릴적 마음 그대로 신비의 안개속에 파묻혀 동화같은 여행을 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본 그리스는 신화속 주인공들이 우리곁에 살아 숨쉬는 그런 모습의 겉모양은 아니었다.
그 흔한 대리석 조각조차 찾기힘든 도심의 현대판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에 누워있는 시꺼먼 鋪道...
하얀 대낮에 길거리에서 삼삼오오 백수마냥 먹고 마시는 젊은이들...
안사도 그만, 팔면 좋고.. 하는 식의 사회주의적 어줏잖은 사고가 사라지지 않은 활기없는 시장골목...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음으로 까만 밤 안면을 방해하던 철부지들...
잘난 선조들 덕분에 먹고사는 주제에 잘사는 서유럽의 젊은이들을 흉내 내는건 아닐까 하는 섳부른
아쉬움이 앞선다. 그나저나,
허리가 유난히도 잘록한 하얀 치마를 입고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던 아프로디테의 후예, 섬섬옥수의
그리스의 소녀가 아직도 눈앞에 환한게 아른거리는 까닭은...
신화속 주인공이 되고팠던 어린시절의 소망이 아직도 가슴 한켠 어딘가에 철없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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