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5. 금..우리의 떠남을 알았는지 하늘도 굵은 빗물을 간간히 흘리고 있다.
밤사이 내린 비로 땅은 이미 촉촉히 젖어있다.
식빵에 햄하나 치즈하나 끼워 썰렁한 아침을 마치자마자 우리의 짐들을 공항까지 싣고 갈 미니밴이
기숙사 방문앞에 도착한다.
오늘의 짐은 2년동안의 살림살이치고는 그리 많지않지만 네식구가 메고끌고들고 트램타고, 기차타고
스키폴까지 가기엔 무리일거 같아 미니밴으로 직접 공항까지 72.5유로에 가기로 했다.
큰 트렁크 2개, 인민빽 2개, 작은 트렁크 2, 큰 베낭 1, 어깨가방 1, 노트북가방 1, 비디오카메라 1, 영이
서류가방 1, 선물 비닐빽 1, 그리고 먹다남은 식빵(이강이용) 봉지 1...
공사구간을 피해 우회도로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창밖은 굵은 비가 간간히 내린다.
2년전 네덜란드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스키폴 공항에 내려 헤이그 학교까지 택시로 갈때에도 이처럼
비가 주저리주저리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 우선 체크인을 하기전에 영미씨는 세금 환급 받으로 갔다.
사실 똑똑한 각시 영미 덕분에 네덜란드 2년(나는 고작 1년도 채 못있었지만...) 간의 멋진 생활을
보낼수 있었기에 각시에게 고마운 마음이야 그지없다..
애들과 산더미같은 짐들을 쌓아놓고 지키고 있는데, 저만치 아이잉이 나타난다.
오늘 귀국하는 우릴 일부러 배웅을 나온 것이다. 키도 작고 못생겼지만 귀여운데가 있는 정이 참 많은
중국아이다. 의사인 남편은 회사일 때문에 같이 못나와서 아쉽단다.
2년전 학교 오리엔테이션 행사장에서 키작은 남편이랑 같이 처음으로 만나 맥주한잔 나누며
영어 반, 중국어 반..웃고 떠들었던 우리 만남 첫날이 어언 2년전...
네덜에 다시 왔다고 초대한 그의 라이덴 집에서 먹었던 마파두부의 맛은 영영 잊을 수 없을 거다.
아이잉이 이강이에게 이별의 선물을 건네는 사이 겨우 세금환급을 받아들고 애엄마가 나타난다.
학교 졸업장까지 챙겨 보여준 덕에 120유로 환급을 받았다...까탈스런 절차도 뚫고 각시가 참 용하다.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향해 귀여운 아이잉은 저 멀리서 까치발을 들고
서서 붉은 눈시울로 우릴 배웅한다.
이 짧은 만남의 이별을 하려고 라이덴에서 여기까지 기차를 타고 그 먼길을 달려왔단 말인가...
참으로 정이 많다.
언제 다시 그를 볼 수 있을까...
나도 가슴 아련히 저미어 오는데, 각시의 맘이야 오죽하겠나..
11시 35분 터키쉬 에어라인으로 이스탄불로 출발, 이스탄불에서 환승, 인천공항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로움이야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
네식구의 비행기삯 절약이 솔찬하다..
체크인할때 각시의 꼬임...터키에 갔을때 터키인 대다수가 이쁘고 참하고 친절하다는 터키인들 칭찬에...
터키 스튜어디어스는 중량을 초과하여 가방을 3개나 덤으로 화물칸에 실어줬다...
덕분에 우리의 손은 무척 가볍고 편했다.
작은 베낭하나, 노트북가방, 비디오, 각시 서류가방...그리고 선물꾸러미 하나..
12시가 다 되어 자리에 앉았는데, 빗줄기가 제법 굵다.
네덜에 뿌리는 우리 식구들의 눈물을 저 빗줄기가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BUMSY(친구들 이름 앞자를 따서 만든 예린이의 단짝 친구들 모임)를 못잊어 매일 눈물로 그리워하는
예린이의 흐느낌,
장래 같이 사업을 하기로 이미 구상이 끝났다는 이강이와 행크...둘다 눈물로 이불을 적시며 헤어질
때의 아련함...
어제밤도 식사까지 대접하고 헤어지고서도 다시 앞치마 바람으로 우리집에까지 찾아와
길거리에서 창문에 매달린 울 식구들을 보며 한참을 눈물짓다 돌아간 재호 엄마...
12시 25분...400여명을 태운 육중한 터키쉬라인 비행기가 2년동안 정들었던 네덜란드의 땅을
떠나기 위해 굉음을 울리며 빗속을 질주하고 있다.
이내 곧 시속 300키로미터로 바람을 가르며 네덜의 하늘로 솟아 오른다.
다들 말들이 없다. 그저 창문밖의 허공, 창아래에 펼쳐지는 지상의 그림자들만 조용히 쳐다볼 뿐...
2년동안 고국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아이들의 감회는 묻지 않아도 알수 있을거 같다.
기내에서도 곧잘 장남감을 갖고 놀던 이강이가 오늘은 통 말이없다. 그저 조용하다.
기내식으로 닭고기...이강이한테는 저열량식을 미리 주문해서 밥이 나왔는데, 별로 맛이 없나보다.
내가 먹던 닭고기 뒷다리 한쪽 떼어주어 겨우 점심을 때우게했다.
이강이는 아침도 안먹었는데...
하늘에 오른지 2~30분이 지나자 독일의 도르트문트 상공이라고 지도화면에 나타난다.
오랜 비행끝에 불가리아를 지나 그리스, 그리고 에게해를 넘어 터키 이스탄불로...
3시간이나 걸린다.
비행기가 착륙준비를 한다. 구름위의 하늘은 한 여름의 햇살로 반짝거린다.
3시 20분, 현지시간 4시 20분에 도착했다.
저녁 7시반에 출발예정...3시간의 시간이 있다.
면세점에 들러 술, 화장품, 향수, 담배 등을 샀다. 물론 선물용...
한국행 비행기 역시 터키쉬에어라인...
게이트에 한국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이 비행기도 400여석이 금새 꽉찬다.
석양의 붉은 빛을 받으며 이륙한 비행기는 한동안의 황홀한 석양노을을 뒤로하고
곧 기수를 동으로 돌린다.
동으로 갈수록 밤이 깊어간다. 한국은 여기시간보다 6시간 빠르니 새벽 2시다..
기내에서 서빙하는 에페스 맥주...터키를 여행하며 마셨던 그 맛있던 맥주를 들이키며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에페스 등 터키의 여기저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터키의 하늘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초저녁...
아동영화에 FBI가 등장하는 영화...모두 시시하고 잼없다..
잠깐 한시간정도 눈을 붙였다 떴는데, 12시...
각시가 조아하는 안토니오 반델라스 주연의 댄스 영화를 시작한다.
이젠 잠자기는 다 글렀다.
영화가 끝날무렵 고비사막 위를 나는것 같다.
아침을 터키식...
두시간후 내린다...창문을 여니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중국 상공을 날고 있건만 맘은 이미 한국에 가 있다.
드뎌...황해바다의 잔잔한 물결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바다만 건너면...나의 고국 한국...
지루해서이기도 하겠지만...정말이지 그리운 고국산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에 안기듯 가슴뛰는 일이다.
오전 11시35분
10시간의 대장정의 막이 인천공항에 소프트 랜딩으로 막을 내렸다.
미리 예약한 짐앤콜 아저씨의 봉고에 짐들을 싣고, 수원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벅차올랐다.
각시도 지긋이 눈을 감는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