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시원한 강바람에 더위를 잊다.
늦은 밤까지 떠드는 주위의 소란을 물리치고 먼저 누워 이생각 저생각 하던차에 깜박 잠이 들었는데, 한잔의 취기가 있어서인지 새벽녘까지 그냥 골아 떨어졌다.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늑대의 울음소리..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가 적막한 나일강의 공기를 흔든다. 실눈을 비벼뜨고 사방을 둘러보니 깜깜한 밤 하늘아래 강 저편의 가로등 불빛만이 조용히 껌벅거린다.
몸은 좀 싸늘하다. 일어나 잠시 애들의 잠자리를 돌봤다.
꽤나 추운가 보다. 웅크린 폼이...
두껍지않은 겨울 등산용 점퍼를 입었는데 새벽이 되니 싸늘하다. 주야간 기온차가 꽤나 있나보다. 그리 춥진 않지만, 담요나 두꺼운 옷은 잠자리에 필요할 듯...
배에 비치된 담요도 있는데, 이넘 저뇬 덮고밟아 덮고 자기가 좀 꺼림찍하다.
조금 있으니 강건너 마을에서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모스크들의 예배소리...
서너군데의 모스크가 일제히 같은 시각에 새벽예배를 시작한다. 거의 합창이라도 하듯...이집트 여행기간 내내 이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들을 수 있는 예배소리이다.
10여분의 장엄한 예배시간이 끝나자 검은 나일강은 다시 흐름을 멈춘 듯 정적속에 휩싸인다. 이젠 늑대 울음소리도, 개짖는 소리도, 모스크의 소음에 가까운 예배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잠든 사람들의 새끈거리는 숨소리와 이불끄는 소리만이 흐르는 시간과 같이할 뿐이다.
갑자기 나혼자만이 이 강의 역사속으로 들어와 있는듯 사뭇 심각한 상념에 잠긴다. 나일강만큼이나 긴 인생의 중턱에 앉아 흘러온 시간과 흘러가야 할 여로에 대한 단상으로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다.
그저 감은 두 눈을 아닐 뜰 뿐이다.
헌데, 주변의 숲이며, 나무며, 물이며, 풀포기들이 차츰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그 사이를 뛰어 다니는 이름모를 작은 새들의 날개짓과 쉴새없이 지저귀는 소리가 상념에 잡혀 허공을 도는 나를 완전히 깨워 일으킨다. 카메라를 울러메고 숲언덕에 올라 싱싱한 아침공기를 맘껏 들이켰다.
갑자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언덕에 올라 떠오르는 때양을 향해 두팔벌려 환호할 수 있는 두발과 두팔이 있고, 그리고 주변엔 난생 처음 같이하는 열대의 풀들이 꿈처럼 펼쳐져 있으니...
강 저편의 숲으로부터 아침해가 솟아 오르자 새들의 지저귐은 합창으로 변하고 이내 나일강은 천년전 오늘도 그랬듯이 역사위에 나타난다. 키작은 새들은 아침 햇살이 이슬을 다 빨아올릴 때까지 지저기고...
배위의 사람들은 아직도 일어날 줄을 모른다. 영국인 할머니와 그의 아들 릭이 일어나 담배한대 입에 문다. 부럽기 그지없다. 이럴줄 알았으면 5개월만 참았다가 담배를 끊을걸 그랬나...
크루즈 항공모함(?) 같은 커다란 여객선이 지나가고 나면 그 물살이 파도가 되어 강가에 있는 우리 돛단배가 요람처럼 흔들린다. 저 재미없는 크루즈 여객선을 선택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몇번이나 생각했다.
캡틴 마헴과 조수 압둘라가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아침은 가벼운 아에시 빵과 치즈, 버터와 쨈 그리고 약간의 과일이다.
바람이 부니 돛을 올리고 따사한 햇빛이 가득 고인 넓은 강 복판에 배를 띄운다. 오늘은 그저 왼종일 이 돛단배에서 우리들끼리 하루를 보낸단다. 나일강 백리길을 바람에 맡기고...
두세시간 유람했을까...소들이 풀을 뜯는 강가에서 돛을 내렸다. 연이어 이웃의 돛단배들도 우리곁에 정차한다.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다. 선장 마헴이 먼저 강물로 뛰어들어 시원스레 강물을 뒤집어 쓴다. 우리들도 강물에 뛰어내려 더위를 식혔다. 모처럼 애들과 물장난도 치고...
나일강의 물은 아직 차가웠지만 물속에 한번 들어간 애들은 나올 줄을 모른다.
점심 식사는 이집션 스파게티와 빵...물속에서 기어나와 웃통벗고 강위에서 먹는 스파게티의 맛... 어찌 말로 다하리요...
예린이는 릭아저씨 한테서 카드놀이도 배우고 주사위게임도 배우고 아주 신바람이 나있다.
돛을 올린 배는 다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싱그런 바람과 푸른 강물을 벗삼아 야자냄새 맡으며 갈대 우거진 강가를 따라 내려갔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우리 결혼 14주년이다. 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넹~~하긴 각시랑 같이 잊었으니 망정이지. 헉~ 죽었다살었당~
다행이 맥주가 아직도 4병은 남아 있으니...그런대로 축배는 들수 있것구먼...
강가에 있는 시골 읍내를 한번 들른단다. 호~ 그것도 조오치~~
나일강변의 사람들이 어찌 사는지 보고싶은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배에서 내려 써금털털하게 개조한 차를 타고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먼지 자욱하게 달려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마을이 꽤 크다..마을은 우리의 시골 장날같은 분위기다.
나귀에 사탕수수를 베어싣고 그 위에 타고가는 늙은이, 삼륜 오토바이같은 택시 자동차, 톱밥이 여기저기 어지러진 제재소, 생소한 과일을 파는 아낙네, 머리에 빵광주리를 이고가는 어린 소년, 물건을 사달라고 조그만 악세사리를 들고 따라다니는 귀여운 여자 아이들, 사방이 탁트인 커피숍(?)에서 물담배 시샤를 빨고있는 할아버지 아저씨들, 사탕수수 쥬스를 직접 만들어 파는 옴팡가게(여기서 1파운드에 2잔 사서 마셨다. 엄청 시원하다..어릴적 옥수수대 쪼개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 축배를 들기도 해야것고 같이 온 식구들하고 저녁에 먹기위해 수박 한덩어리를 사서 돌아왔다.
저녁은 카레...압둘라의 음식솜씨가 갈수록 조아진다. 결혼 기념일을 각시가 얘기했나 보다. 축하소리와 함께 수박을 잘랐는데...헉~~이럴수가...
수박 속이 한나도 없다. 마헴이 달려와 냄새를 맡아보더니 골아서 못먹는단다...헉~
3파운드...우리돈 600원 그냥 날렸다..꽤 큰 수박이었는데...우리식구 10명은 충분히 먹을수 있다고 각시가 얼마나 고르고 골랐었는데...
그냥 모든건 액땜이다...괜시리 각시한테 미안해진다.
대신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하긴, 맥주만 있어도 훌륭한 잔치다. 이런 망망대해 돛단배에선...
돛대와 언덕위 야자나무 사이에 걸린 초승달도 우리의 오늘을 축하하는듯 오랫동안 걸려있다.
이곳 초승달은 우리동네 초승달과는 달리 조각배처럼 누어있다.
시간표시는 시차때문에 현지시각과 맞지 않습니다...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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